상처 입은 생명 앞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고상우,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Still Breathing》… 동물 복지…
상처 입은 생명 앞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고상우,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Still Breathing》
동물 복지·생태 연대의 새 지평을 열다
"아직 숨쉬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멸종위기종부터 실험동물까지, 푸른 빛의 연대
서울 사비나미술관(관장 이명옥)에서 2026년 5월 2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고상우 작가의 개인전 《Still Breathing: 아직 숨쉬고 있다》는 올해 박물관·미술관 주간 공식 선정 전시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박물관협회와 사비나미술관 공동 주관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단순한 동물 소재 미술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다. 상처 입은 동물들의 생존과 존엄을 생태 윤리, 분단 현실, 동물 실험의 문제와 촘촘히 엮어내며 동시대 현대미술이 도달할 수 있는 사회적 발언의 수위를 다시 한번 가늠하게 한다.

"4년 전과 달라진 것" — 멸종에서 생명으로, 개체에서 연대로
고상우는 네거티브 필름 효과와 디지털 페인팅을 결합한 독창적 기법으로 국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다. 종(種)의 위기, 생태 파괴,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 등 거시적 동시대 이슈를 다루면서도, 개별 생명이 겪는 구체적 고통과 회복의 가능성을 화면에 응축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의 전작들과 결을 같이 하면서도 한 층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작가는 개막식에서 이렇게 밝혔다.
"4년 전에는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 아래 제가 사랑에 빠진 동물들을 직접 작품으로 만들었다면, 이번 2층에 있는 모든 동물들은 어떤 형태로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학대를 받는 존재들입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분열된 세상을 하나로 잇는 것이고, 저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지금 이 시점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평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멸종이라는 종(種) 단위의 위기의식에서, 지금 이 순간 숨쉬고 있는 한 생명의 고통과 존엄으로. 주제 의식의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NLL 위의 물범 — 분단이 낳은 역설적 낙원
이번 전시의 가장 강렬한 연작은 점박이물범을 담은 세 점이다. 〈경계선 Borderline〉, 〈국경없는 얼굴들 Borderless Faces〉, 〈내 얼굴을 기억해 Remember My Face〉가 나란히 걸린 전시장은 전체가 깊은 파란빛으로 물든다.
고상우는 지난 2년간 WWF(세계자연기금)와 함께 백령도와 충남 가로림만 일대에서 점박이물범 조사·촬영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했다. 전 세계 1,500마리에 불과하고 천연기념물 제331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이 동물을 만나기 위해, 작가는 해군 모니터링 아래 배를 타고 10킬로미터 앞 북한 해역 근처까지 나아갔다.


현장에서 목격한 장면이 작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왼쪽 끝이 백령도의 끝자락이고, 정면에 보이는 섬이 북한 땅이었어요. 300마리 정도가 물에 떠서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지구는 하나였는데 누가 분열을 시켜 놓았을까. 우리는 이 선을 그어놓고 서로 넘지 못하게 하면서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데, 점박이물범은 그 경계선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더라고요."
인간에게는 극도의 긴장지대인 NLL(북방한계선)이 점박이물범에게는 사냥꾼 없고 먹이 풍부한 낙원이라는 역설. 작가는 이 아이러니를 시각화함으로써 분열과 대립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평화와 공존, 생명의 자유에 대한 질문을 조용히 되돌려 보낸다. 〈내 얼굴을 기억해〉 속 아기 물범의 한쪽 눈에 얹힌 분홍 하트는, 작가가 5미터 거리까지 조심스레 다가가 이 생명과 나눈 찰나의 교감이 남긴 흔적이다.

현대미술 × 거점동물원 — 전례 없는 협업 모델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축은 국내 제1호 거점동물원인 청주동물원과의 협업이다. 실제 보호·치료 중인 동물들의 구체적 사연을 작품화한 것은 국내 현대미술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 협업은 작가에게 내적 갈등을 요구하는 결단이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도 동물원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었기 때문에, 동물원과 협업을 한다면 그 당위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청주동물원을 직접 방문하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청주동물원은 거점 동물원으로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어떻게 보면 셰퍼 같은 동물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작 〈하나 Hana〉는 2018년 야생에서 탈진된 채 발견된 독수리의 이야기를 담는다. 선천성 부리 기형으로 스스로 먹이를 사냥할 수 없어 청주동물원에서 7년째 보호받고 있는 하나는, 작품 속에서 별이 뜬 밤하늘을 배경으로 홀로 서있다. "동물원에 갇혀 있지만 자유를 갈망하며 날고 싶은 복수의 눈빛을 보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화면은 상처 너머 소멸하지 않은 의지를 포착한다.

3,000번의 주사, 마스카라의 감옥
전시의 또 다른 충격은 〈사라진 감각 Lost Senses〉에서 온다. 마스카라 안전성 검증을 위해 3,000번의 화학물질 주입 실험을 당한 토끼 '랄프'를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팝아트적 화면의 화사함 뒤에 날카로운 고발을 숨기고 있다.
"저는 마스카라의 기둥을 감옥의 창살로 재해석했지만, 저 아이가 언제든지 뛰쳐나올 수 있도록 짧게 그렸습니다. 목걸이의 '3K'는 3,000번의 동물 실험을 당한 것에 대한 나름의 보상입니다."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게 된 랄프. 목걸이는 훈장이 아니라 멍에다. 그러나 작가는 랄프를 결코 비루하게 그리지 않는다. 당당하고, 심지어 눈부시게.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마스카라 하나에 새겨진 고통의 무게를 미적 충격으로 전달하는 것, 그것이 고상우의 방법론이다.

이명옥 관장 — "윤리적 시선이자 공존을 향한 질문"
사비나미술관 개관 30주년의 해에 이 전시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명옥 관장은 개막식 환영사에서 전시의 본질을 이렇게 짚었다.
"작가는 멸종위기 동물이나 소외된 존재들에게 강렬한 빛을 투사합니다. 그들을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만의 자유를 지켜내는 생존의 주체로 바라봅니다. 이 눈부신 빛은 우리가 타자의 존엄성을 다시 발견하게 하는 윤리적인 시선이자 공존을 향한 질문입니다. 매체의 경계를 허물고 공간 전체를 생동하는 감각의 장소로 전환하는 고상우의 작업은, 사비나미술관이 30년간 지향해온 융합의 미학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고상우 작가는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에게 드로잉 초상을 선물했다
작가와 기획자가 12년을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낸 전시다. 고상우는 오프닝 현장에서 직접 그린 이 관장의 드로잉 초상을 무대 위에서 건네며 "수많은 후배 작가들을 위해 30년을 버텨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제발 그냥 이대로 놔주세요"
오프닝 인사말 끝에 작가는 조용히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비틀즈의 〈Let It Be〉예요. 제발 우리를 그냥 이대로 놔주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치겠습니다."
짧은 한 문장이 전시 전체의 무게를 응축한다. 《Still Breathing》은 사라져가는 존재들을 위한 만가(輓歌)이자, 아직 늦지 않았다는 선언이다. 동시에 현대미술이 동물 복지, 생태 보전, 시민 교육의 영역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천적 모델이기도 하다.
5층 프로젝트룸에는 작가가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정부, 지자체, 기업, 재단과 협업한 공익 프로젝트의 기록이 전시된다. 청주동물원 동물들을 모티프로 한 드로잉 80점(A3)도 함께 선보이며, 관람객은 작가와 함께하는 드로잉 클래스 등 전시 연계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상처 입은 생명 앞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파란빛 전시장을 나서며 그 질문이 오래 따라온다.
전시 기간: 2026년 5월 2일 – 5월 31일 장소: 사비나미술관, 서울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 주관: 한국박물관협회, 사비나미술관
이상민 | 수석전문위원 · 미술인문학자
한국작가후원연대(KASC) 이사장 · 통섭미술 비평가










